그녀가 소년을 다시 만났는지 말해줄래?

[민음북] 질문하는 릿터(25호) - 나의 그림책은? 본문

꽃을 보듯 책을 본다/다음호를 기다리며

[민음북] 질문하는 릿터(25호) - 나의 그림책은?

열낱백수 2020. 9. 14. 21:42

삽화가 100장 들어 있어도 동화책은 동화책이며 그림책이 아니다.

   우선 나는 이번 『Littor』 25호를 읽으면서야 '그림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나는 80년대생이고 어렸을 때 보았던 수많은 '그림'이 있었던 책들 중 릿터가 말해준 '그림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삽화가 들어있는 동화책을 읽었고 그 마저도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는 그림이 전혀 없는 책으로 널뛰기하듯 건너뛰었기 때문에 내 독서기에는 소위 '아동기'와 '청소년기'가 없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그냥 활자만 빽빽한 책을 읽으면 어른이 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남들은 초중고등학교 시절 읽었다는 『어린왕자』라든가, 『데미안』이라든가 하는 소위 성장소설을 뒤늦게 읽게 되었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 읽었던 그 맛도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내가 주인공 나이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하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답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다.

 

   이럴진데 그림책에 대한 내 경험은 얼마나 부실하겠는가. 현대적 그림책 문법을 구사하는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80년대 중후반, 90년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면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엔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내가 경험해보았을 가능성은 더더군다나 희박하다. 아니나 다를까. 소개되는 외국 유명 그림책 작가들 중에서 내가 직접 작품을 읽고 본 작가는 없었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 그림책은 없는 걸까.

   2년 6개월 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결혼하기 전엔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결혼 후에도 걸어서 15분 거리에 살았고 난 결혼식날 엄마를 보고 터지지 않던 울음이 외할아버지를 보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러내렸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장례를 치르는 동안엔 날 잠식하지 않았다. 그 슬픔은 그 후로 너무 뜬금없이 일상생활 중에 찾아왔다가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보낸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는데 처음엔 '동화책이네?'(나는 이번 호를 읽기 전엔 그림책과 동화책 구분을 하지 못했다) 했다. 책 제목은 '어느 날,' 이었는데 표지를 넘기고 면지를 넘기자 보통은 또 한번의 제목이 반복되어 인쇄되어 있을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어느 날』은 어린아이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누군가에게서 듣고 할아버지의 부재를 이곳저곳에서 느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라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나오기에 나 역시 할아버지의 죽음을 상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겐 이미 '돌아가셨다'가 '죽었다'로 변환되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접어놓았기 때문에 펼쳐야 확인할 수 있게 해 놓은 그 마지막 페이지의 문장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곳으로 돌아가셨대요.' 다른 페이지보다 2배 넓어진 그 넓다란 페이지 안에 가득찬 그림 속 할아버지가 '돌아간 그 곳'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계셨다. 

    그러고보면 내가 선호하는 책의 범주를 못 벗어나고 있을 때도, 친구들은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항상 새로운 독서를 선물해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 또한 친구에게 선물받은 『꽃들에게 희망을』은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그림책이었다. 결코 이 책은 그림없이 텍스트만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으며 이 책을 떠올렸을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랑 애벌레들이 징그럽게 다닥다닥 붙어 기둥을 이루는 장면과 나비가 된 애벌레의 모습이었다. 다른 애벌레들이 이유도 모른 채 기어 올라가는 그 기둥으로 나도 꼭 올라가지는 않아도 된다고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자고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이번에 『릿터 25』를 읽으며 굳이 내가 손 뻗어 잡아오지 않았던 그림책의 세계를 엿보고 있다. '나의 그림책'에 대해 말하는 10편의 수기 중에서 나는 소윤경 작가의 『콤비』를 추천한 <환상의, 콤비>라는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고이 내 위시리스트에 책제목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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