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소년을 다시 만났는지 말해줄래?

[클럽 창비] 『창작과비평』 2020여름호 나의 목소리/활동을 마치며 본문

꽃을 보듯 책을 본다/다음호를 기다리며

[클럽 창비] 『창작과비평』 2020여름호 나의 목소리/활동을 마치며

열낱백수 2020. 9. 6. 23:21

   봄호와 여름호를 함께 했고, 가을호와 겨울호 함께 읽기가 예정되어 있는 『창작과 비평』 여름호의 마지막 이야기. (읽기는 진즉 읽었으나 아직 손대지 못한 '시' 파트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된다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겠다.)

   어느 순간, 나는 좀더 얇고 좀더 있어보이는(?) 디자인의 문학잡지들에는 시선을 주면서도 너무(?) 두툼하고 내가 평소 잘 읽지 않아오던 방향의 글들이 잔뜩 수록되어 있을 것임에 분명한 계간지는 멀리해왔다. (Littor, Axt, Newphilosopher.... 이름부터 얼마나 허세부리기 적당한가.)

   물론 클럽 창비 1장을 신청하게 된 것은 내가 『창작과 비평』을 한번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았다는 무경험이 한 몫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봄호는 헉헉대면서 기나긴 여정을 쫓아갔음을 고백한다. 1장은 봄호와 여름호가 한 세트였으므로 내가 봄호읽기에서 녹초가 되었다 한들 GG선언은 허용되지 않았고 별나게 긍정적인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봄호에서 안면 텄으니 이제 좀 쉽겠지' 그런데 정말 그랬다. 여름호는 한결 수월하게 읽어졌고 오히려 너무 편해진 탓에, 읽기는 진즉에 읽어두고 글 쓰기에 게으름을 피기 시작했다. 

   어쩌면 봄호만 읽은 상태에서 2장 신청기간이 찾아왔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름호까지 읽은 지금 나는 가을호와 겨울호 함께 읽기를 위한 2장을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내가 좋아 선택하는 단행본 책들보다 읽는 데에 두·세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꼼꼼이 읽을 이유가 생겨난다. 어쩌면 나에게 『창작과 비평』은 대학시절까지 대학교 강의 30분 전에 강의실에 도착해서 자판기 커피로 펼쳐진 지면을 꾸욱 눌러주고 읽던 경제신문과 같다. 내가 선택해서 읽는 글이 아니고 누군가 중요하다고 여겨 배치된 매일매일의 경제기사들처럼 3개월 단위로 나는 누군가 권하는 글들을 신뢰하며 읽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벚꽃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집콕한 상태로 봄과 여름이 지났다. 벌써 폭염이냐 싶게 다가왔던 초여름의 더위에 깜짝, 끝이 없는 기나긴 장마에 또 깜짝, 태풍 때문인지 정말 여름이 끝인건지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에 또또 깜짝 놀라며 가을이 찾아오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나는 집콕생활 중이고 여전히 밖을 나설 땐 마스크를 쓰고 여름호에 벌써 깊숙이 스며든 코로나19의 영향을 읽었다. 우리의 2020년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 마음으로 『창작과 비평』 가을호를 읽기 시작할 테지만 마치 조금만 견디면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집칩거를 시작했던 1월말처럼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의 시계는 1초, 1초, 코로나19 이전과 똑같이 흐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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