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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듯 책을 본다/다음호를 기다리며

[클럽 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0여름호 대화 읽기

열낱백수 2020. 8. 6. 20:19

   아.... 나는 어쩜 모국어 앞에서 이렇게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부끄러워지는가....ㅠㅠ 이번 대화편도 너무 어렵게 읽었음을 처음부터 고백하고 시작해볼까 한다. 

   이 글은 '한국어'가 주제이고, 주제로 들어가기 전에 사회를 맡은 백낙청 선생께서 '한글'과 '우리말'을 구분해서 써 줄 것을 요청한다. 한마디로 이 글은 우리가 쓰는 '글'이 아니라 우리가 내뱉는 '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나 제대로 이해한 거 맞나?ㅎㅎ) 일단 '한국어의 시대구분'부터 하고 넘어가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한국어의 시대구분 이유는 대화편의 제목이자 주요 주제 자체가 「근대 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희망찬 오늘」이기에 그 시대를 특정하기 위함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시대구분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대구분과의 차이가 있어 그 설정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진다. 나는 한국 근대의 시발점을 1876년으로 잡자는 백낙청 선생의 의견에 수긍이 갔는데 타의였다고 기억하기 싫은 과거라고 밀어내면 역사를 마주볼 수는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제가 일단 한국 근대의 시발점을 1876년으로 잡자고 말씀드린 이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근대라는 것은 세계사적인 개념인 만큼 세계적으로 공통된 기준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기준에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란을 피하려면 근대는 자본주의 시대라고 이해하는 게 논쟁을 줄이는 면도 있고 우리 시대 문제를 성찰하는 데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독자적으로 개척했든 식민지로 편입됐든 세계 시장질서에 편입되는 것 자체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흔히 주체적인 근대화 노력을 더 멋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그건 근대는 좋은 거고 우리가 노력해서 성취해야 한다는 근대주의적인 사고가 많이 작용한 걸로 봐요.(287p)

   시대구분 후엔 한국어의 규범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가 이어지는데 국문전용과 국한문혼용이냐를 두고 벌어진 논란들과 조선총독부와 조선어학회가 각각 국가표준어와 민간표준어를 만들면서 두 개로 도입된 표준어 제도에 대한 문제점들도 논의된다. 나는 사실  총독부의 표음주의와 주시경 선생의 형태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는데 형태주의적 맞춤법이 더 옳아서가 아니라 (결국 지금에 와서는 더 옳은 방향이라고 여겨지지만) '민족적'인 것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그 선택을 이끌었다는 느낌을 받아 '말과 글도 정치적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해방 후 표준어를 내세우며 추방 대상이 된 사투리에 대한 문제나, 국어순화운동, 한자병용문제와 외래어표기법, 그리고 오늘날에 요즘 세대들이 만들어내는 신조어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사투리는 여전히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대화 속에서 언급된 것 처럼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투리가 다양하게 등장하곤 있지만 아직은 그 사투리를 쓰는 등장인물의 다듬어지지 않은 성격을 드러내려 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뉴스 하단 자막에 등장하곤 하는 국립국어원의 권장 순화어는 여전히 어딘지 낯설고 시대에 맞는 단어가 아닌 느낌을 받을 때가 많고, 병용과 원음에 가까운 외래어표기의 문제는 독자와 청자를 고려하는 방법으로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화편을 읽어가며 나 역시 각각의 사안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다시 한번 다듬게 되는 계기였지만 이해가 어려운 어법설명 앞에선 이해되는 만큼만 머리에 넣고 넘어갔음을 인정한다.^^ 어려웠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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