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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0여름호 논단 읽기 본문

꽃을 보듯 책을 본다/다음호를 기다리며

[클럽 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0여름호 논단 읽기

열낱백수 2020. 7. 17. 20:45

   이번 『창비』 여름호 논단에는 네 편의 글이 실렸다. 따끈따끈한 이슈라고 할 수 있는 남북관계, 제21대 총선, n번방사건으로 다시 불거진 디지털 성폭력,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글들이 그것인데, 재빨리 움직여 담다보니 글이 쓰인 시기와 그 글을 읽는 지금의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간격 사이에 또 수많은 변수들이 나타났다. 불과 2~3달 전에 쓰인 글들일진데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일들의 진행과정을 나는 목도하면서 글을 읽고 있는 이 기분이 참 묘하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대담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길」 은 그런면에서 남북관계가 찢어지기 쉬운 종이 위에 조심스럽게 쌓아올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읽게 된 글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하는 모습이 TV에 나오기 전까지 남북관계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봄바람을 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그 뒤 행보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북이랑도 잘 지낼 수도 있겠네~.' 통역관  없이도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는 대화를 지켜보며 '역시 우리는 한 민족이었어'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북미대화가 더이상 진전을 못이루고 있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래도 두 정상이 손을 맞잡았던 그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을 남한에 투척했고 정부도 이전과는 다른 강경입장을 보이면서도 미국과 연락을 취해서 이 사태를 모면해보려는 분위기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고 이해도 된다. 북미 간 진전이 없다면 무조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추진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무조건 편들어 달라고, 안들어주면 내 맘대로 하겠다는 듯한 저 북한의 태도에는 강경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늘 아침 책상에 앉아 일력의 숫자를 확인하고나서야 깨달았다. 오늘이 제헌절이라는 걸. 태극기를 게양하며 짧게나마 헌법을 생각해본다. 법을 생각해본다. 법을 만드는 국회를, 집행을 맡는 정부를, 잘 적용되도록 판단하는 법원을 떠올려본다. 두번째 글 「촛불혁명, 제21대 총선 그리고 87년 체제」는 제21대 총선의 결과를 그 전에 개정된 선거법 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통과과정을 되짚어보며 바라본다. 물론 어떤 법의 개정이 가져올 변화를 100% 완벽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토록 개정의도와는 다르게 정반대로 결과가 귀결된 이유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과정은 물론 뉴스를 통해 접해왔지만 시간이 지난 후 정리된 과정을 되돌아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글의 필자는 이번 제21대 총선의 결과를 구조적 변동 즉, 민주파 우위의 정치지형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구조적 변동의 주요 원인으로 국가정체성을 둘러싼 문화적 변동을 꼽고 있다. 87년체제를 통해 주조를 시작해온 국민적 정체성은 4·3사건, 5·18광주항쟁, 세월호사건, 6월항쟁, 촛불혁명 등에 대해 화해하고 보듬어야 할 사건으로 인식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정당의 패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세번째 글인 「디지털 성폭력, 분노를 넘어 분기점으로」 을 읽기 시작하며 나는 평소 이런 뉴스를 볼 때 토해내는 똑같은 반응을 반복했다. "처벌을 강화해야지." (나는 어쩌면 이러한 사건에 대한 책임과 방향을 온전히 나와 관계 없는 일인양 미루어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나와같은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검찰과 재판부의 법 해석 관행의 문제이며, 따라서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법적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이를 성적 욕망이라는 본능 문제로 환원하려 하면'(382P) 디지털 성폭력은 근절되지 못할 것이다. "남자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성폭력을 컨텐츠화 하여 상업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산업'이 존속한다면 어떻게 바뀔 수 있겠는가.

   오늘도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이런 나날들이 드물지 않다. 하루빨리 백신이 개발되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의 필자인 피터 베이커는 마거릿 클라인 쌜러먼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상황이 이미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어떤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이 위기를 바라보는 두 가지 측면(낙관적 견해와 비관적 견해)을 소개한다. 아무래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에 더 시선이 갔는데 그 주장 중에서도 위기로 '정치적 현 상태'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이 흥미로웠다. 오랜 세월동안 '주류 정치에서 전통적인 노선은 세상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광범위한 정부의 개입은 실현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라' '"시장"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390P)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이 노선이 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그렇지 않은가.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좌파적 사고로 치부되었을 공공마스크와 재난지원금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필자는 코로나19 이후 기후변화로 올 위기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이 메르스 사태를 겪어내며 코로나19를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듯이 코로나19가 지나가더라도 더 장기적이고 더 어마어마한 위기를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를 맞아들여야 하는가. 코로나19때도 느꼈듯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흘러가는 무엇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창비』여름호와 상관없는 사담. 오늘, 나는 내가 북클럽으로 가입한 한 출판사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수정본으로 교환해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교환의 이유는 문자에 적혀있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통해 찾아본 그 교환의 이유는 한 작가의 무단 인용 때문이었고 내가 북클럽 가입한 세 곳의 출판사 중에서 두 곳이 여기에 연관되어 있었다. 사실 출판사가 작가가 소설에 지인과의 대화를 그대로 무단 인용했는지까지 파악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생각에 교환신청을 하지 않고 가볍게 넘겼다. 그리곤 읽다만  「디지털 성폭력, 분노를 넘어 분기점으로」를 마저 읽기 시작했는데, 글을 읽으며 내가 가진 생각이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았던 생각을 반성하게 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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