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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0여름호 산문 읽기 본문

꽃을 보듯 책을 본다/다음호를 기다리며

[클럽 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0여름호 산문 읽기

열낱백수 2020. 8. 2. 21:27

    8월이다. 벌써. 

    친구들이 그득그득 들어있는 톡방에 월말마다 '나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 코로나에 내 시간을 빼앗긴 느낌이 들어.'라고 한 일 없이 흘러가는 것 만 같은 2020년의 시간흐름을 코로나 탓으로 넘겨버린지도 몇 달째 계속 되고 있다. 코로나가 일상으로 침범해 들어왔을지라도 결코 건들일 수 없었던 하루라는 '시간'은 여전히 24시간인데도 말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이전과 다를 거라고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시대를 주제로 한 예측들도 뉴스로 다큐로 많이 들린다. 이번 『창작과 비평』 여름호 논단/현장에서도 이와같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이 시대를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번 글은 그래서 반갑다. 위기감을 고조시킬 사건이 있는 것도, 코로나19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견해를 풀어내는 글도 아닌 황정은 작가의 요즘 일상에 대한 산문이다. 제목부터가 「일기(日記)」다. 글을 쓰고 책 좋아하고, 책상에 앉아 일한다는 사람들의 고질병 중 하나인 디스크를 경험한 후 루틴대로 하던 운동이 3월에는 중단되었다. 나도 1월 말 우리동네 바로 옆에서 확진자가 나온 후 2월부터 한달간은 집앞 마트 빼고는 밖엘 나가지 않았다. 

   이 산문이 더욱 가까이 느껴졌던 이유는, 코로나때문에 생전 처음 경험해본 이중적인 감정들을 글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파주와 종로와 강서구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동선을 확인했다. (중략) 노출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사람의 생활과 식사, 그런 걸 보면 그런 걸 보고 있다는 것이 민망하고 미안했다.(431P)

   어떤 이의 동선을 보면 화가 부르르 났다가도 또 어떤 이의 '집-회사'만 반복한 동선을 보고 있으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권리로 그의 동선을 보고 있는가.) 글을 쓴 작가는 본인의 일상을 '점(點)'이라고 표현한다. 백수인 나 역시 일상이 '점'이다. 하지만 글에서도 언급된 대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점일 수 없다. 혹은 본래 일상은 '선(線)'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자의 혹은 타의로 '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가게를 닫고, 어려움을 겪는 회사에서 퇴사하고 혹은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퇴사를 선택하고 점이 된 사람들도 있다. 또한, 평온하던 일상의 파괴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악한 면을 끌어내기도 했다. '혐오'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며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선택'해야만 했고 지금도 그 선택은 진행중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투표를 하고, 바이러스 억제를 위해 사람의 자유를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이런 묵직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잠시 집 주위를 산책다니고 마트갈 시간을 정하는 것도 예전엔 필요하지 않았던 선택의 시간을 거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보인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435P)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백수의 도리를 다하려고 한다. 충분히 '점'이 될 수 있는 일상을 특별한 이유없이 혹은 방역지침 지키지 않으며 '선'으로 만들지 않는 일이 없도록. 그러고보니 오후 9시가 넘은 지금, 오늘 하루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았다. 이 글을 마저쓰고 집앞 마트에 나가 바나나와 참외, 바닥을 들어낸 진간장을 사와야겠다. 물론 마스크 쓰고 다녀와 손도 깨끗하게 씻어야 할 것이다. 애써 만든 습관이 누군가의 건강에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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