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소년을 다시 만났는지 말해줄래?

[책/001]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2015 본문

꽃을 보듯 책을 본다/책의 비망록

[책/001]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2015

열낱백수 2020. 5. 28. 15:27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기묘한 동거

   주인공인 열네살의 모모는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였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았는데 로자 아줌마의 집에는 모모 이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살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세부 속사정은 다를지언정 맡겨진 이유는 같았다. 부모가 그 아이들을 양육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아이들을 돈과 함께 맡기면 로자 아줌마는 아이들을 맡아 키워주었다. 친엄마는 아니었지만 비록 대가를 받고 제공해주는 양육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사이에는 가족애가 생겨난다.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미 정들어버린 아이들을 양육비가 끊겼다는 이유로 내칠만큼 로자 아줌마는 모질지도 못했다. 이 세상을 쓸쓸히 홀로 살아가야만 했던 로자 아줌마에게 나이보다 너무 많은 것을 일찍 깨달아버린 모모는 아들이자 친구이자 기댈 수 있는 의지처였다. 누구에게나 삶은 영원하지 않고 로자 아줌마에게도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이 둘이 생과 사의 경계를 겪어내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가슴에 소낙비를 후두둑 뿌려대는 흔들림을 경험하게 만든다.

매일 아침, 나는 로자 아줌마가 눈을 뜨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나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마 없이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났다.
『자기앞의 생』 (86P)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열다섯살 때 사진을 보며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꿈꿀 법한 대통령이나 과학자 같은 꿈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꿈을 갖는다. 열네살의 아이가 벌써부터 삶의 무게를 여실히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모모에게 생(生)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기보다는 무겁고 사람을 파괴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현실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모는 끝까지 로자 아줌마를 지켰다. 그것도 아줌마가 원하는 방법으로. 부모를 알지 못한 채 빈민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자란 모모의 성장기에 왜 많은 사람들은 '내 인생책'이라는 수식어를 기꺼이 붙이는 걸까.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모모는 자식교육을 생각한다는 부모들이라면 끔찍하게 여길 만한 곳들을 누비며 세상 나쁜 짓들도 일찍 알아버렸지만 그가 로자 아줌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 무엇보다 순수했고 '사랑'이라 자신있게 확신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모가 마지막에 건넨 메시지는 이 책을 쉽사리 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중략) 라몽 의사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자기앞의 생』 (311P)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질 두려움을 끌어안고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지켜봐야했던 모모는 놀랍게도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답을 독자에게 건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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