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소년을 다시 만났는지 말해줄래?

[책/002] 천명관 『고래』 문학동네, 2014 본문

꽃을 보듯 책을 본다/책의 비망록

[책/002] 천명관 『고래』 문학동네, 2014

열낱백수 2020. 7. 28. 22:07

   꽤나 두툼한 (560 페이지 정도) 두께감의 소설이지만 뭉클의 온라인독서모임 도서로 『고래』가 올라왔을 때, 주저없이 신청한 것은 그동안 이 소설에 대해 들어왔던 많은 좋은 평가들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이야기꾼이었다. 결코 지루할 새 없이 이런 분량의 소설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소설은 스물일곱 춘희를 등장시키면서 시작한다. 작가는 이미 첫 페이지에 그가 벙어리이고 열 네살에 이미 백 킬로그램을 넘어선 거구라는 인물정보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 덕분에 나는 머릿속에 한 인물의 외형을 상상하며 그가 교도소 출소 후 버려진 벽돌공장에서 몸을 씻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읽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춘희의 과거가 궁금해질 무렵, 뜬금없이 이야기는 국밥집을 운영하는 한 노파에게로 건너뛴다. 처음에는 그 노파가 외할머니인가 싶었다가 춘희 이야기에 살짝 언급된 엄마의 이미지가 애꾸는 아닌 것 같아 그럼 이 노파가 어떻게 춘희에게로 이어질 것인가를 추측하며 읽어갔다.

 

   중간에 밝혀지게 되지만, 노파가 서까래에 꽁꽁 숨겨둔 돈을 춘희의 엄마인 금복이 발견하게 되면서 '노파-애꾸' 모녀와 '금복-춘희'모녀 사이의 연결고리가 형성케 된다. 이렇게 보자면 결국 노파의 등장도 '금복-춘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요, '금복과 춘희의 일생', 8글자를 560페이지로 지루하지 않게 늘린 이야기가 바로 『고래』인 셈이다.

 

   그렇다고 내가 리뷰를 쓰며 560페이지로 늘릴 수는 없으나 8글자만 언급하고 말 일도 아니어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자면, 금복은 거지상태에서 춘희를 낳았으나 거지부터 평대 제일 잘 나가는 사업가의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로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산 인물이다.

그녀는 고래의 이미지에 사로잡혔고 커피에 탐닉했으며 스크린 속에 거침없이 빠져들었고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녀에게 '적당히'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194~195p)

  금복은 항상 거대한 것, 생명력 넘치는 것에 매혹되었고 그러한 것을 좇았기에 부를 가져야만 했다. 종국에 가서는 여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남자가 되기까지 하니 참 동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금복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성향의 춘희는 비록 말을 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의 말과 세상의 일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과 소통했다.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그녀의 특별한 재능은 바로 그런 한없이 평범하고 무의미한 것들, 끊임없이 변화하며 덧없이 스러져버리는 세상의 온갖 사물과 현상을 자신의 오감을 통해 감지해내는 것이었다.(188p)

  그래서 서커스단의 코끼리였던 점보와 소통할 수 있었고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의붓아버지 文과도 말없이도 서로를 향한 신뢰를 쌓아갔다. 그녀의 삶에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 바로 점보와 벽돌 중 벽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것 역시 文이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점점 춘희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커져만 가는데 금복의 마지막은 금복의 선택에 따른 결과였지만 춘희의 일생은 춘희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중략)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393p)

   차라리 춘희가 그 비극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글을 읽어갔다.

그러나 춘희는 자신의 상처를 어떤 뒤틀린 증오나 교묘한 복수심으로 바꿔내는 술책을 알지 못했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치되지 않았다.(445p)

   교도소에서 큰 상처를 받은 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살아가는 삶을 택했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던 춘희, 부디 그곳에선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사실 이 소설은 읽는 중간중간 불편한 묘사들이 많은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금복과 춘희였으나 소설 속 세상은 너무도 남성중심이어서 금복이 겪는 일련의 상황들이 나에게는 너무 불편한데 서술자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풀어내니 이것 참... 생각해보니 이런 느낌을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읽으면서도 느꼈었는데 그 소설이 1959년에 출간되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2004년 출간된 『고래』가 같은 불편함을 준다는 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