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소년을 다시 만났는지 말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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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듯 책을 본다/책의 비망록

[책/004] 테드 창 『숨』 엘리, 2019

열낱백수 2020. 8. 30. 21:29

    '좋은'소설이란 어떤 걸까,를 고민해본 적이 있다. 내 기억에 그 고민의 첫 이유는 책을 좋아하면서도 '소설은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지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소위 '시대를 반영했다'고 하는 까칠까칠하고 읽고 있으면 내 기분까지도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소설들을 골라 읽었다. 판타지, 무협지 소설은 읽으면 안될 것 같았다. 

   성차별, 퀴어, 취업난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요즘'소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왜 소설을 읽는 거지? 24시간 뉴스만 송출하는 뉴스채널의 소설버전을 원해서 책을 읽는 건가? 그건 아니었다. 나는 책 읽는 게 재밌으니 읽고, 어떤 내용이 텍스트화된 걸 영상화된 것보다 선호하니 읽어왔다. 그게 때론 시대를 반영할 때도 있지만 이미 시대적배경이 아주 옛날인 고전일 때도 있었고 어떨 땐 최근에 쓰여졌지만 꼭 현실을 반영하진 않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금 읽고 싶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다보니 '시대를 반영한다'는 것의 의미도 의외로 넓을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SF가 '상상'의 세계속에서만 존재하리란 보장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소설 앞에 '공상'이란 단어는 더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테드 창의 『숨』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물론 타임머신 문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속과는 다르게 바그다드가 아닌 도시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우주의 생명체가 「숨」과는 달리 '허파'가 아닌 다른 장기의 문제로 멸종의 시간에 가까이 가고 있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유의지가 심판대에 오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속 예측기와는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 그렇다. 현재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해서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현실화시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아이디어였다.

   특히 이 단편집 『숨』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정합성을 중요시하는 '하드 SF'작가 테드 창의 소설집이기에 나의 미천한 과학지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아홉 개의 세계 속으로 가 볼 수 있었다. 나에게 평행우주 속 나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프리즘이 주어진다면 어떨까?(「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이 세계가 신의 창조물임이 분명한 증거가 도처에 널려있는데 그 창조의 중심이 '인간'이 아니라면 그것은 과연 나의 믿음에 어떤 영향을 줄까?(「옴팔로스」) 망막 프로젝터와 리멤으로 우리의 기억력이 완전해질 수 있다면 나는 프로젝터와 리멤을 수시로 사용하게 될까?(「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나는 테드 창이 촘촘하게 설계한 아홉 곳의 각기 다른 세계를 탐험하면서 내가 주인공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될지 생각해본다. 그가 설계한 세계가 내가 탐험하며 궁금했던 폭넓은 요소들까지도 품고 있어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보았을까'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이 소설집은 17년만이라고 한다. 2년에 한번 정도 새로운 글을 발표한다고 하니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 책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질까 싶다. 다음 소설집은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하게 될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숨』 이전에 나왔다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그 기대감을 달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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