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소년을 다시 만났는지 말해줄래?

[민음북] 손끝으로 문장읽기 - 『라이팅 클럽』 필사&단상 3 본문

꽃을 보듯 책을 본다/같은 책을 읽습니다

[민음북] 손끝으로 문장읽기 - 『라이팅 클럽』 필사&단상 3

열낱백수 2020. 8. 7. 16:47

하지만 내가 쓴 글들이 정말 소설답다거나 문학적으로 뛰어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냥 그렇고 그런 글일 뿐이었다. 그러나 왠지 일거수일투족이 다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하지 않으면 중요한 걸 다 놓쳐 버릴 것 같았다.

   영인이는 계속 글을 썼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글로 직업적 성취를 이룬 것은 김 작가였다.) 아마 영인이는 지금도 계속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계동은 아니겠지만 어딘가에서 라이팅 클럽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글에 삶의 무게를 기대는 것은 영인 뿐이 아니다. 사실 나도 그렇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이제 숙제로 제출할 일도 없는데 일기를 쓰고 플래너를 쓰고 블로그 포스팅을 쓴다. 어쩌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록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록의 강박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직업적으로 성취한 작가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나날들을 쌓으며 글을 썼겠는가.)

그해 봄, 나는 오랜만에 R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래서 너 지금 뭘 한다구?" (중략) "네일 아트! 네일 아트!" R은 정말 경박스러울 정도로 깔깔 거리고 웃었다. "야 너 진짜 웃긴다. 아트 좋아하더니 결국 아트를 하긴 하는 구나."

   『라이팅 클럽』을 다 읽었다. 소설 초반부를 읽을 때 내가 김 작가를 바라본 시선과 소설의 끝의 그것은 엄청난 차이가 생겼고 영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인'다워서 좋았다. 변하지 않았고 그런 영인 덕분에 참 즐거운 독서를 했다. R이 영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내 시선이 닮았다. 앞으로 아침의 기세와는 달리 하루가 어그러졌음을 느끼며 우울해지는 오후 3시가 되면 '오후 3시마다 신삥으로 태어나는' 영인을 떠올리며 힘을 내 볼 수 있을 것 같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