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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북] 손끝으로 문장읽기 - 『라이팅 클럽』 필사&단상 2 본문

꽃을 보듯 책을 본다/같은 책을 읽습니다

[민음북] 손끝으로 문장읽기 - 『라이팅 클럽』 필사&단상 2

열낱백수 2020. 8. 4. 15:12

매일 밤 꿈을 꾸었다. (중략)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나는 다짐했다. 이 꿈을 기록해야만 해! 기록해야만 해! 기록해서 뭔가를 얻어야 한다구!

   종종 책을 읽으며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살면서 흔하게 경험하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려고하면 뭐라고 묘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걸 작가들은 정확하게 콕! 집어 글로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자여서 책을 읽다가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도대체 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고전이라 하는지 이해를 못하며 읽어가고 있을 때 가끔 눈앞에 나타나곤하는 실지렁이를 명확히 묘사한 부분을 읽으며 '이거야!' 전율을 경험한 일이 있었다.)

   그 작가들도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능력을 안고 태어난 건 아닐 터, 책을 읽으며 '나'의 글쓰기를 위한 고군분투를 보면서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내공도 쌓여갔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악몽을 꾸면서도 기록에 대한 강박이라니....좀 안쓰러워진다.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 일 외에 다른 일에서 정신줄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임신 초기의 울렁증처럼 평생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정도가 심해지면 바보가 된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병을 앓는다. 어떻게 보면 내가 더 심각한 환자였다. 그러나 K가 나보다 더 중증이었고 훨씬 순수했다.

   『라이팅 클럽』을 읽는 초반부에는 나 역시 김 작가를 향한 시선이 주인공 '나'와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딸을 그렇게 방임, 방치, 뭐 하여간 그런 식으로 양육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김 작가의 글솜씨 역시 하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읽어갈수록 김 작가의 양육이 주인공 '나'를 독립적인 한 명의 인간으로 세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다. 특히 글쓰기에서 현실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것은 '나'와 K가 똑같고 오히려 K는 집안이 경제적 여유도 있었고 원했다면 대학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는 선택을 반복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정말 K가 더 순수했기 때문인가. 

  책도 3/5정도 읽어간다. 원하는 결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꼭 주인공 '나'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진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단지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순간들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면 여전히 구역질 날 것 같은 기분일테니 가끔 행복해지는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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