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소년을 다시 만났는지 말해줄래?

[영화/001] 니콜라스 베도 <카페 벨에포크> 2019 본문

'한낱'아니고 '열낱'백수/영화가 필요한 시간

[영화/001] 니콜라스 베도 <카페 벨에포크> 2019

열낱백수 2020. 6. 3. 16:29

   제작진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예매하면서 넘겨짚은 예상은 '아, <어바웃 타임>같은 시간여행 영화인가?' 였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극히 사실적이다.

   영화는 빅토르-마리안이 아들, 지인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에서 시작된다. 아들 막심과 아내인 마리안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맞춰 살아가지만 빅토르에게 시대를 쫓아가는 건 버거운 일이기만 하다. 한땐 잡지에 자신의 그림을 연재했을 정도로 재능있는 빅토르였지만 세상은 더이상 잡지 속 그림을 찾지 않는다. 잡지는 폐간되고 새로운 문물에 거리감을 느끼는 빅토르에게 세상은 새로운 일을 주지 않는다. 무기력에 빠져드는 빅토르에게 아들 막심과 아들의 친구인 앙투안은 초대장 하나를 건넨다.

돌아가고 싶은 하루가 있나요?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시점을 묻는 물음에 빅토르는 한 여인을 처음 만났던 '1974년 5월 16일'을 이야기한다. '100% 고객맞춤형 핸드메이드 시간여행' 회사를 운영하는 앙투안은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면 시대를 완벽한 세트와 연기자들로 구현해 고객들이 마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것 같은 착각 속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시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자, 이제 빅토르의 요청에 따라 1974년이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물론 이건 시간여행과 달리 고객들이 본인들 돈을 지불하고 요청한 프로그램이니 고객들도, 빅토르도 안다. '내가 실제로 과거로 돌아간 게 아니고 단지 재현된 상황이라는 것을.

   빅토르도 처음에는 그랬다. 거짓인 줄 알았기에 단지 내 소중한 추억을 다시 되짚을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을 다시 경험하자 내 신체는 여전히 나이들었음에도 온 몸에 다시금 생기와 자신감이 솟아나는 느낌이 들고 재연배우를 통해 느끼게 된 그 시절 사랑의 감정이 지금의 감정으로 느껴졌다.

   마치 언제 내가 슬럼프였냐는듯 그림그리는 것에도 속도가 붙는 빅토르. 펜으로만 그림을 고집하던 빅토르였지만 이젠 디지털 방식으로도 그림을 그리면서 유쾌하게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한다. 물론 부작용도 뒤따른다. 그가 첫사랑을 연기하는 재연배우 마르고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어쩌면 그녀도 나를 사랑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재연 상황에 대한 감정적인 이입이 점점 깊어져만 간 것이다.

   그는 정말 마르고를 사랑한 것일까? 내게 그 대답을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첫사랑인 마리안과는 다른 감정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자기의 삶을 사는 마르고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고 그것은 마르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르고역시 앙투안을 향한 사랑의 감정과 빅토르를 향한 감정이 달랐을지라도 빅토르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 감정은 거짓이라고 생각하던 과거의 재연상황에 훨씬 더 몰입하게 만들었고 삶을 다시금 살아있게 만들어주었다. 마르고가 떠나고서도 빅토르에겐 여전히 그 변화된 모습과 한동안 잊고지냈던 과거의 추억들이 남겨졌다.

   영화를 본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미 나이들어 버렸다는, 젊음은 20대에게나 유효한 거라는 핑계는 더이상 통하지 않음을, 적어도 내가 시도도 해보기 전에 나이를 핑계로 시작도 하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지금시작해도 충분하다는 것을. 

Comments